나는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사이의 정통 사극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복장, 말투, 생활사 등 그 시대상이 움직이는 모습은 육안으로 볼 방법이 없고 오로지 TV로만 접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극이 갖는 가치는 높다. 사극은 사실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데 그때는 역사와 팩트를 구분할 지적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TV 드라마 정도의 고증에도 어떻게든 만족하면서 봤다. 그래서 사실처럼 말하는 역사 속 이야기는 항상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지금 유행한 전혀 현실감각과는 거리가 먼 퓨전 사극보다는 적어도.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는 확실히 정통 사극은 아니다. 명절이었는지 친척집에서 DVD로 본 기억이 나는데 다 이준기 얘기만 하고 영화를 조금씩 보고 별로 감흥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결심하고 제대로 봤다. 그리고 가볍게 무릎을 쳤다. 맞아 이런게 천만 영화지. 내가 받은 감동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예쁜 영화’예쁜 남자’ 신드롬을 일으킨 이준기가 너무 부각된 면이 있는데, 이 영화는 정말 모든 게 예쁘다. 색 대비를 살린 원색의 영상미에서 눈길을 끈다. 선명한 색농도를 자랑하는 개그맨들의 붉은 의상이 푸른 하늘 아래 대비돼 2005년 영화치고는 제법 상큼한 영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고증을 잘 살렸다고 보기 어려운 영화지만, 장녹수가 입고 나오는 궁중복식도 정말 예쁘고 각종 소품들도 사랑스럽고 단아한 멋을 살렸다. 미술적인 면에서 단연 성공했다.OST도 그렇다. <장화 홍룡>에서 ‘돌이킬 수 없는 행보’로 잘 알려진 이병우 음악감독이 맡았는데, 프롤로그에서 애틋함의 페이소스를 극에 끄집어내자 영화 초반부터 몰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주 언급하지는 않지만 BGM의 요소도 정말 중요하지만 깨끗한 영상미에 어울리는 예쁜 음악이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연산군의 치세를 아름답게 덧칠한다.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을 바라보는 이준익 감독의 시선이다. 그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깨끗하고 따뜻해 보인다. 사농공상에도 들어갈 수 없는 천박하고 천한 사람들, 광대를 향해 연민의 눈을 돌린다. 사료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 평가보다는 “이런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마음이 있고 슬픔이라는 것이 있습니다”라는 이준익의 인간관은 집주인 집에 몸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이준기를 지켜주는 감우성, 광기 가득한 폭군 정진영에게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준기, 개그맨들이 사물놀이를 하며 즐겁게 길을 걸어가는 모습에서 간접적으로 묘사돼 있다.왜 ‘이준기’인지 알겠다<왕의 남자>를 천만 영화에 등극시킨 일등 공신은 신인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이준기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예쁜 외모는 예쁜 미장생과 어울렸고, 장녹수 역의 강성연도 질투가 날 정도로 단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눈으로만 보면 오로지 이준기만 돋보인 셈인데 2000년대 후반 앞서 말했듯이 ‘예쁜 남자’ 신드롬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영향력이 상당했다. 물론 절정을 이룬 것은 그 석류음료 광고였지만요.<왕의 남자>에서 봐야 할 것은 이준기의 외모뿐만이 아니다. 경력이 얕은 신인의 연기는 늘 불안감이 존재하는데, 그런 불안감을 일거에 불식시키는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한때 인기에 그쳤을 것이고 이 영화도 1000만까지 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신인답게 감정선이 흔들리거나 조절이 안 돼 한꺼번에 터지는 지점이 있었는데, 그 부분에서 마음이 낚싯바늘에 걸리듯 살짝 걸려 끌려갔다.남자로 태어나 인생 액셀을 밟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감우성의 설득에 남사당패가 왕 앞에서 공연을 하는 장면. 광대놀이는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장르인데 사대부들인 신하들은 얼쑤라는 호응조차 없고 왕은 웃어야 하는데 전혀 웃지 않는다. 공허한 북소리, 장구소리만 울려 퍼지는 궁궐 앞마당에서 결국 모두 죽은, 모두 울음만 나오는데 이준기는 ‘윗입 대령하기’ 기지를 발휘해 마침내 왕을 웃기는 데 성공한다. 정진영은 빙그레 웃었지만 나는 왠지 능숙하게 전달되는 울림을 받았다. <왕의 남자> 전체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마지막 장면, 눈먼 감우성이 “잡어타령”이라며 인생 마지막 줄타기를 하는 모습에서 이준기는 “야, 이 잡어야!”라고 절규한다. 절제되고 위장된 감정이 아니라 신인만이 할 수 있는 삶을 건 절규였다. 이후 감우성과 함께 줄을 뛰어다니며 “뭐가 되고 싶냐”고 묻는 감우성의 질문에 “나는 말할 것도 없이 광대다!”라고 대답하는 모습으로 마침내 그 기쁨이 폭발,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엔딩 장면을 연출했다. 왜 <왕의 남자>에서 그렇게 이준기만 찾았는지 이제야 알았다.연산군에게-「나는 여기 있고, 당신은 거기에 있어요」노파심에게 말하지만 연산군에 대한 미화 서술은 아니다. 왕의 남자도 연산군을 미화하는 내용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연산군이 무엇을 해도 세탁할 수 없는 패륜과 악행을 저지른 것은 분명하지만 개인사를 파헤치면 사정없는 사람은 어디 있을까 싶지만 생각해 보면 연산군처럼 인생의 출발부터 불행한 왕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서 수많은 매체에서 그의 파란만장 일대기를 다룬, 역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이 미친 인물을 여러 번 다루는 것이다. 이야깃거리가 되어 장사가 되는 이야기니까요.국모의 지위가 박탈되고 사약까지 받은 어머니를 둔 아들의 심정을 현대인에게 어떻게 어필해야 할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미 역사적으로 답이 나오긴 했다. 장녹수라는 존재 때문이다. 기록된 바와 같이 장녹수는 양귀비처럼 나라를 들어올렸다 놓았다 하는 경국지색의 용모가 아니다. 그러나 막대한 동안을 무기로 사람을 다루는 재주가 있어 어머니 결핍을 가진 연산군의 빈틈을 훌륭하게 공략했다. 연산군은 장록수를 통해 결핍된 모성애를 갈망하고 충족시켰다. <왕의 남자>에서 그 역할을 공길이 나눈 것이다.”어머니 잃은 슬픔에 아이가 된 연산군은 당신이 상상도 할 수 없는 패륜을 저질렀다고 합니다”가 기존 사극이 답습하고 있는 시선이라면, <왕의 남자>는 연산군 배경에 존재하는 그 슬픔에 주목했다. 연산군이 나쁜 짓을 저지른 이유는 사실 어머니를 잃은 슬픔 때문이었다는 실드가 아니라 연산군 같은 냉혈한에게도 눈물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새로운 시각 제시였다. 이에 정진영이 선보인 연산군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지평을 연 입체적인 캐릭터가 된 것이다.정진영 내면에 존재하는 그 슬픔을 이준기의 내면이 맞닿아 있다. 손가락인형극과 그림자인형극을 보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정진영에서 그는 비련의 주인공이 된 한 소년을 보았다. 그것은 같은 아픔을 겪는 그 자신이었기에 함께 눈물을 흘리고, 그의 눈물을 닦고, 궁궐을 떠나자는 감우성의 말에 남자라고 설득한다. 퀴어코드는 존재하지만 동성애는 아니다. 연산군에게는 잃어버린 모성애를 되찾는 과정이고 공길에게도 정신적 사랑의 완성이다. 이런 스토리는 정말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마틸다는 레온을 정말 사랑했을까?같은 질문을 감우성에게 던진다. “장생은 공길을 정말 사랑했을까?” 사실 <왕의 남자>에서 가장 설명이 어려운 게 바로 감우성과 이준기의 관계다. 단순히 아끼는 동생이라고 할 수 없는 행동들이 너무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양반댁에 몸을 파는 공길을 볼 수 없어 그의 손목을 잡고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왕 앞에서 벌인 광대극이 성공한 후 왕의 처소를 드나드는 이준기를 보고 감우성이 심란해지는 장면은 죄책감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모습이다.예컨대 이준기가 정진영에게 끝내 벼슬까지 받아오자 “양반에게 팔던 몸, 왕에게 파는 게 낫다는 거냐”고 쏘아붙이는 모습에서는 묘한 질투심이 엿보이고, 그러면서도 이준기가 조정대신들에게 쫓겨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에서 투신해 구한다. 공길의 필적을 위조해 그의 목숨을 노리는 강성연의 음모에도 “내가 쓴 것이다”며 죄를 뒤집어쓰려는 행동도 단순한 연민이나 희생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그런데 이준기와 감우성은 연인관계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그래서 정진영과 이준기의 관계처럼 노골적인 신체접촉이 발생하는 장면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아 관계 해석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구식이지만 플라톤이 정의한 사랑의 발전법을 육체적 사랑, 도덕적 사랑, 정신적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정신적 사랑이나 무조건적인 사랑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앞의 육체적·도덕적 사랑의 단계가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자 이준기를 향해 눈까지 잃고 수없이 자신을 바쳐왔지만 이준기는 정진영에게 묶여 감우성을 구할 수 있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반군이 밀려드는 가운데 마지막 줄타기에서 처음으로 이준기와 함께하는 결말을 맞았는데, 그 결말이 정말 아름다운 시퀀스였지만 움직일 수 없는 비극을 돋보이게 했다는 점에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장생은 공길을 정말 사랑했을까?’ 질문은 영화의 열린 결말처럼 각자 스스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총평영상미 OST 연기 연출 의미 입담 등 전반적으로 <왕의 남자>는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수작이자 배급사의 횡포나 스크린 독과점 논란 없이 정정당당한 입소문으로 승부를 본 진정한 천만 영화였다. ‘천만 영화’라는 제목이 너무 강렬해서 지금은 ‘만든’ 천만 영화가 점점 상위권으로 세를 뻗치고 있지만 하위권으로 떨어진다고 <왕의 남자>가 갖는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한의 이 세상에서 신나게 놀다 가면 그만”이라는 감우성의 마지막 대사, 그 아래 서술로 <왕의 남자>는 자격 완성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왕의 남자’ 감독이 준익 출연 감우성, 정진영, 강성연, 이준기 개봉 2005.12.29.No language de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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